Holy Bible’s Family Story

CBS 새롭게하소서: “꿈의 꿈을 나누다” 드림스드림 대표

https://youtu.be/0dMz-xjVo0s?si=c4Wa6kvrgsX7JEv2

2013년 2월 3일, 감기로 병원에 입원했던 임성경 군(당시 만 9세)은 이후 70일간 중환자실에 머무르며 생사를 오가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기적 같은 회복을 경험한 후 퇴원하게 되었고, 이후 2년간 매일 10시간씩 신장투석을 이어가며 신장이식까지 받는 긴 여정을 지나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지금, 지구촌교회 비전뉴스 300호 특집기념호에 아들과 함께 간증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이번 간증은 아들이 자신의 아픔과 회복의 여정을 직접 글로 써서 외부에 처음 공개한 것이기에, 저희 가족에게는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2013년 병원에 입원했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저희 가정을 위해 함께 기도해 주시고 사랑으로 동행해 주신 분들께 이 간증을 나누고 싶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고통 중에도 저희와 함께해 주신 여러분을 통해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Grace)였고,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특별한 호의와 축복, 곧 페이버(Favor)였음을 고백합니다.

함께 기도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앞으로의 여정 속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과 늘 함께하시길 기도드립니다.

Glory to God. 

[죽음에서 생명으로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다]

임 성 경(대학부)

저는 어릴 때부터 홈스쿨을 하며 부모님의 성경적인 가르침 아래 자라 왔습니다. 저의 아침 일과는 새벽예배로 시작해 큐티 본문을 묵상하며 필사하는 것이었고, 저녁에는 가족들과 한 자리에 모여 가정예배로 하루를 마무리해 갔습니다. 이 같은 일상을 통해 매일 말씀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갔지만 저에게는 죽음과 마지막날에 관한 말씀은 늘 마음을 두렵게만 했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10살 겨울 때, 감기가 찾아오더니 이유 없이 증세가 심각해지고 각혈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못 가서 신장이 망가지며, 폐 등의 모든 장기와 뇌 핏줄 여러 군데가 터지면서 몸의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로 중환자실에 인공호흡기를 꽂고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모든 장기가 망가졌고, 40일간 인공호흡기를 꼽았기에 죽음을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희망이 없는 것 같은 상황 속에서 부모님은 간절히 기도하셨고 SNS를 통해 많은 분들께 기도요청을 하셨습니다. 부모님의 지인들부터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들, 그리고 지구촌 성도님들의 중보기도 속에서 저는 기적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인공호흡기를 꼽았음에도 상태가 나아졌고 70일간의 중환자실 생활 끝에 죽음의 위기를 넘기고 일반 병동 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제가 오랜 시간 병동에 누워 있었기에 퇴원해도 정상적인 생활은 힘들 것 같으며 평생 누워 지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말씀에도 불구하고 저는 2주 만의 재활 치료를 통해 두 발로 걸어 집으로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기적적인 상황을 지켜본 의사 선생님은 현대의학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병을 고쳐 주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14살이 되면서 신장이 다시 악화되었고, 결국 투석 치료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매일 저녁 10시간씩 투석을 하며 음식을 조절해 먹고 약을 복용하던 나날은 또래 친구들과 저의 삶을 비교해 보았을 때 제한적인 것들이 많았고, 이는 당시의 저를 낙심하게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저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바로 메이크어위시재단(Make A Wish)을 통해 어린 시절부터 가장 좋아했던 인물인 월트 디즈니가 만든 디즈니월드를 방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16살이 되던 해, 어머니께서 신장을 이식해 주셨고, 저는 다시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그해 수련회에서 저는 하나님을 깊이 만났습니다. 저는 그동안 성경을 읽으면서도 죽음의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수련회에서 이 생각이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않음으로 인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기도하는 중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 중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는 로마서 10장 10절 말씀이 떠올랐고, 하나님께 저의 두려움을 솔직하게 고백하며 나아갔습니다.

이후 수련회가 끝나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제 안에 서서히 평안이 임하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느꼈고,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수련회를 다녀온 이후 꿈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음성을 듣고 난 처음엔 주저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듣고 보아 왔던 순교자들의 삶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19살 때 대학을 고민하며 삶을 돌아보던 중에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저를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르시고자 홈스쿨을 통해 세상과 구별된 삶을 훈련시키시고, 말씀을 통한 신앙생활의 습관을 기르며, 죽기 직전의 상황까지 이르렀음에도 살려 주신 이유와 은혜를 보게 하셨습니다.

그로 인해 순종하는 마음으로 신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기도해 주신 목자님들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현재는 교회 중등부에서 목자로 섬기며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기적과 은혜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건지시고, 신앙의 길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이제는 그동안 받아 온 사랑을 세상에 전하며 살아가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이 놀라운 이야기들이 많은 분들에게 위로와 소망이 되길 바랍니다.

[은혜의 발자취를 따라갑니다]

임 채 종 장로 (지구촌교회)

청년부 시절, 아내를 만나 결혼했을 때 이동원 원로목사님께서 주례사 중에 하신 말씀, “천국은 마치 우리 집 같은 곳이란다”- 이 말씀이 종종 떠오르곤 합니다. 청년부에서 목자로, 그리고 신혼부부 목장을 개척하며 목자와 마을장으로 섬겼던 시간들은 제게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특히 신혼부부들과 함께 어린 자녀들을 키우며 목장 생활을 했던 시간들은 큰 축복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힘들었던 기억보다 목장 식구들 덕분에 행복하고 은혜로웠던 순간들이 먼저 떠오릅니다.

아내가 셋째를 임신했을 때, 군산 국내 선교를 시작으로 매년 아이들과 목장원들과 함께 국내 선교를 다녔습니다. 그 과정에서 목장 안에서 경험하지 못한 또 다른 교회를 만나며 신앙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새벽기도회와 교회의 다양한 행사에도 아이들과 함께 참여하며 신앙의 뿌리를 더욱 단단히 세워 갔습니다. 저희 부부는 양가 가족 중 처음으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기에, 믿음을 다음 세대에 잘 계승하기 위해 기도하던 중 2006년 교회에서 열린 홈스쿨링 세미나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큰 은혜를 받고 결단하여 첫째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홈스쿨링을 시작했고, 세 아이 모두 홈스쿨링을 통해 대학까지 진학했습니다. 물론 초반에는 어려움도 많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부부와 자녀들이 함께 주님의 제자로 세워지고, 한마음으로 신앙을 키워 가는 귀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2013년 2월, 큰아들 성경이가 감기로 입원했다가 하루 만에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70일 동안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며 생사의 갈림길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너무도 갑작스럽고 큰 시련이었기에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그동안 함께했던 목장 식구들과 지구촌교회 성도들의 기도로 어려움을 이겨 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아들은 기적적으로 회복되어 퇴원할 수 있었습니다. 퇴원 후에도 2년 동안 매일 10시간씩 신장 투석을 해야 하는 힘든 시간이 이어졌지만, 2017년 11월, 아내가 아들에게 신장을 이식해 주면서 다시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한국침례신학대학교 신학과 4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이처럼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 2013년 10월, 가난한 나라에 학교를 짓는 NGO 드림스드림이 시작되었습니다. 병상에서 고통받는 아들을 바라보며, 마치 성경이와 같은 처지에 놓인 네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예수님의 제자로 세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선교지에 학교를 짓기 시작한 것입니다. “단체 운영비 0원, 100% 재능 기부로 가난한 나라에 100개 학교를 짓자.” 이 작은 꿈으로 시작한 일이 이제는 “만방 오지에 1만 개 학교를 짓자”라는 큰 비전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지금까지 54개국에서 368개 학교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지난해 말에는 200개 학교를 지을 수 있는 후원금이 모금되었습니다. 드림스드림은 지구촌 성도들의 동참과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성장하여, 이제는 전 세계 선교지에서 학교를 짓는 글로벌 NGO로 자리 잡았습니다. 지어진 학교들은 평일에는 학생들이 공부하는 배움터가 되고, 주일에는 교회로 사용되며 수많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세워지고 있습니다.

지구촌교회의 목장 공동체에서 받은 사랑과 은혜, 홈스쿨링과 사업을 통해 배운 경험, 그리고 아들의 아픔을 통해 깨달은 모든 것이 드림스드림을 통해 예수님을 모르는 열방의 영혼들을 섬기는 일에 쓰이고 있습니다.

혹시 지금 이해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 속에 계신 분들이 있다면, 그 안에 반드시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믿음의 공동체와 함께 그 길을 걸어간다면,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실 것입니다. 저희 역시 고난의 터널을 지나며 함께 하는 공동체의 힘을 경험했고, 무엇보다 그 모든 순간마다 도우시는 하나님을 깊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희 가정을 지금까지 인도하신 에벤에셀 하나님, 임마누엘 하나님, 여호와 이레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그리고 저희 가정을 위해 기도해 주시고 사랑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크리스찬 타임스 기고문 (2022년 10월 27일)

저희 가족은 세 아이를 어릴 적부터 한국에서 사립이나 공립학교에 보내지 않고 홈스쿨링으로 교육해 왔습니다. 저희가 홈스쿨링을 시작하던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홈스쿨링을 선택하는 가정은 매우 드물었습니다.

홈스쿨링을 마친 뒤, 올해 3월부터 첫째 성경(19세)은 한국침례신학대학교 신학과에, 셋째 에스더(14세)는 한국침례신학대학교 기독교교육학과에 입학하여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습니다. 둘째 요셉(17세)은 8월 24일 미국 오하이오주 톨레도대학교 데이터사이언스 전공 2학년으로 편입해 학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세 아이는 작년 9월 함께 침례를 받았고, 홈스쿨링의 과정을 마친 후 올해 한꺼번에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아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대학생활을 잘 감당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특히 요셉은 미국 대학에 진학한 지 한 달 만에 한 편의 에세이를 썼는데, 이를 읽은 교수님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이 에세이는 학교 도서관 정문에 걸어 전교생이 읽게 해야 합니다.”

홈스쿨링을 해 오며 저와 아내도 ‘이 길이 과연 맞는 길인가’라는 고민을 수없이 했고, 아이들이 힘들어하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그 과정을 신앙으로 소화하고, 감사와 고백으로 아름답게 표현해 준 것이 참 고맙고 감격스럽습니다.

여호와 이레 하나님께서 저희 가족을 홈스쿨링으로 이끄시고 오늘까지 인도해 주신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한 이 과정을 성실히 감당해 준 세 아이들과, 곁에서 수고해 준 아내에게 고맙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요셉이 작성한 영문 에세이를 한글 번역본으로 기고합니다.

-크리스찬 타임즈 한국특파원 임 채 종-  https://www.kchristian.com

[임 요 셉 에세이 한글 번역본]

제목: 자서전 쓰기

새벽 5시.
졸린 눈을 비비며 어둠을 가르고 건물 안으로 들어선다. 문틈 아래로 불빛이 새어 나오고, 힘 있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 조용히 자리에 앉는다. 단단한 음성의 설교자가 말씀을 전한다. 그리고 가족처럼 보이는 초등학생 세 명이, 단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설교자의 말을 받아 적는 데 온 마음을 쏟고 있다.

그 아이들은 매주, 평일이면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쉽게 발견된다. 그 모습을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의아해할 것이다.
“왜 저 아이들은 새벽 5시에 교회에 앉아 있는 걸까?”
그 세 아이 중 한 명이 바로 나였다. 이 글에서 나는 ‘글쓰기’라는 주제를 따라,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여정을 돌아보고자 한다.

내가 글자를 배우던 시절을 떠올리면, 한낮 도서관에서 어머니가 평온한 목소리로 동화책을 읽어주시던 장면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아이들이 잠들 때까지 아버지가 성경을 읽어주시던 목소리도 기억 속에 선명하다.

읽는 법을 익히고 나자, 부모님은 마치 물고기를 물에 풀어주듯 우리를 도서관으로 ‘풀어주셨다.’ 갈렙이 오래전에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우리 남매는 도서관을 하나씩 ‘정복’해 가는 일을 좋아했고 함께 그 시간을 즐겼다.

우리는 대학에 가기 전까지 공립학교나 사립학교를 다닌 적이 없다. 부모님이 선생님이었고, 우리는 학생이었다. 우리 학교는 성경을 너무도 중요하게 여겨서, 6살부터 14살까지 무려 8년 동안 같은 형태의 숙제를 내주었다.

성경은 기독교의 거룩한 경전으로 66권의 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대도, 역사도, 문화적 배경도 서로 다른 40명의 저자가 이 책을 기록했다. 그 안에는 시와 노래, 잠언, 왕조의 기록, 역사 서술, 전기와 논평, 논쟁과 권면, 편지와 예언, 그리고 복음서가 함께 담겨 있다.

다시 주제로 돌아가면, 부모님은 내게 성경 한 장을 열 번 읽고, 그 내용을 종이에 완전히 옮겨 적으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말씀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오늘 내 삶에 무엇을 적용할 수 있는지 반 페이지 분량으로 쓰게 하셨다. 이 숙제는 8년 동안 가장 기본이면서도 가장 의무적인 ‘매일의 과제’였다.

글쓰기와 관련된 나의 첫 기억은 ‘기사 필사’였다. 원래는 30분에서 1시간이면 끝낼 수 있는 일이었지만, 집중력이 부족했던 나는 해가 뜰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계속 베껴 쓰곤 했다. 끝이 없어 보이던 그 지루한 시간들이, 결국 내 안의 ‘읽고 쓰는 근육’을 단련시켰다. 또한 다양한 글의 구조와 기사 장르를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코로나19는 우리의 학교를 한 단계 발전시키고 개혁했다. 부모님은 모두가 싫어하던 오래된 숙제를 새롭게 바꾸셨다. 우리에게 ‘설교를 쓰고, 설교하라’고 하신 것이다.
주말을 제외한 매일 저녁, 가족예배 시간마다 각자 준비한 설교 한 장을 돌아가며 전하기 시작했고, 그 시간은 1년 동안 이어졌다. 우리는 매일 공유되는 성경 본문을 바탕으로 설교를 써야 했다.

나는 이 새로운 시스템과 글쓰기가 특별히 좋았다. 그 이유는 다섯 가지였다.

첫째, 청중의 자리에서 설교자의 자리로 관점이 바뀐 것이 가장 큰 충격이었다. 나는 늘 설교를 ‘듣고 적는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둘째, 무엇을 말해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청중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어떤 문제 앞에 있는지, 사람들이 무엇을 갈망하는지 이해해야만 지금의 삶에 맞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었다.

셋째, 같은 본문으로 설교를 해도 ‘서론’에서 승부가 난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도입부가 청중의 마음을 붙잡느냐 놓치느냐를 결정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넷째, 성경의 한 구절도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설교 한 페이지를 쓰기 위해서는 같은 본문을 여러 번 곱씹어야 했고, 더 나은 관점과 표현을 찾기 위해 주석을 뒤졌다.

다섯째, 각 문장에 어떤 단어를 쓰고, 어떤 순서로 배열할지까지 깊이 고민하게 됐다. 성경 본문을 나의 말로 다시 써 내려가는 시간이었고, 글이 기록된 시대적·문화적 배경을 이해해야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또한 나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학과 철학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 책들은 ‘오늘의 일정’처럼 가벼운 주제가 아니라, 중요하지만 무겁게 느껴지는 질문들—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들—앞에 서게 했다.

무엇보다도, 여러 해석으로 열려 있는 문학과 달리 철학은 비교적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 그 시간이 참 좋았다. 나는 늘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해 왔고, 철학자들이 삶의 의미를 찾아 끊임없이 씨름하는 여정을 간접적으로 따라가며 경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에 대해 내 의견을 정리하고, 나만의 논평을 덧붙이곤 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과정이 내 정체성을 형성해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철학 책은 단어 하나라도 정확히 이해하며 읽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올바른 의미를 붙잡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나는 국어사전을 손에 들고 읽다가, 뜻이 불분명한 단어가 나오면 즉시 사전을 찾아보곤 했다. 그 과정은 내 글에서 ‘의미가 분명한 단어’를 선택하도록 나를 훈련시켰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이 부분에서 자주 실패했다. 지금도 나는 영어에서 비슷한 단어들을 섬세하게 구별해 쓰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결론적으로, 모국어를 배울 때 쏟아부었던 노력과 같은 수고를 들이지도 않으면서, 외국어를 능숙하게 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욕심에 가깝다. 나는 어휘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마다, 사전에서 한국어 단어에 대응되는 영어 단어를 찾는 습관이 있다. 그러나 한국어와 똑같은 뉘앙스를 가진 영어 단어를 찾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나는 바샤르 교수님의 수업을 통해, 영어와 모국어 사이의 미세한 뉘앙스 차이를 구별하는 능력을 키우고 싶다. 내가 영어 작문을 배우기 시작한 지는 고작 1년 1개월뿐이고, 내 모국이 영어권 국가가 아닌 만큼 영어가 능숙하지 않은 것이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약속하고 싶다. 영어가 부족해 실망하는 순간이 찾아와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넘어질지라도 계속 달리는 사람—그 사람이야말로 끝까지 남는 자이며, 최선의 사람이라고 나는 믿는다.

(I want to make a promise to myself: I will never give up, even when my shortcomings in English leave me discouraged. To me, “the remainder” is not the one who never falls, but the one who keeps rising and running.)